대다수의 의뢰자분은 ‘어떤 업체를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드물게, 가끔씩,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좋은 제작사의 지원을 받아 놓고도, 프로젝트에 적합한 감독님과 미팅하고도, 최종 결정은 잘못 내리는 분들이 정말 간혹 있습니다. 선택의 과정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요?
대표적인 실수 사례를 정리합니다.
⚠️ 견적만으로 선정하는 실수
속도·효율·양이 중요한 영역을 Quantity라 부릅니다. 반대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영역을 Quality라 부릅니다. 질Quality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양Quantity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재화(제품)시장에서는 대체로 양Quantity만 평가합니다. 제품은 항상 동일하기 때문에 가격만 비교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서비스시장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같은 예산으로 영상을 만들더라도 어떤 업체에게 맡기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산을 줄이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프로젝트의 예산 전체를 낭비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영상제작은 [전략-기획-연출-제작] 네 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 [기획-연출]단계에서 질Quality적 평가가 이뤄집니다. 하지만 견적서는 대부분 [제작]의 범위에 해당하는 양Quantity의 항목만 채워져 있습니다. 견적서로만 판단한다면 정작 중요한 기획과 연출의 역량은 평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 역할범위에 대한 기본개념 파악에 도움될 글 <영상제작프로젝트의 역할범위(R&R) 구분 방법>
행정처리 절차상 비교견적이 꼭 필요한 의뢰자분도 있습니다. ‘계약하는 업체의 견적은 타업체보다 무조건 낮아야 한다’는 조건은 물품구매팀(상품,재화)의 업무관행이라 서비스업체와 계약을 진행할 때에는 맞지 않는 절차라서 난감해하시는 의뢰자분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적합업체를 우선 선정한 뒤, 행정절차에 필요한 비교견적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면 대부분의 업체가 준비해드리는 편입니다.
⚠️ 포트폴리오만으로 선정하는 실수
포트폴리오가 좋다고, 내 영상도 잘 만들 것이라고 단정해선 안 됩니다.
포트폴리오를 한국말로 하면 ‘제작이력’입니다. 이력정보를 토대로 경험 / 기술 / 인프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뢰자분이 만들어야 하는 영상과 완전히 똑같은 영상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제시된 영상이 어떤 측면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프로젝트와 연관성이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 의뢰자는 당연히 “이전에도 만들었으니 이번에도 이정도 만들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업체 측에서는 다른 의미로 제출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순 스태프로 참여했던 프로젝트임에도 포트폴리오로 사용하는 경우, 심지어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지인의 포트폴리오를 빌려 영업하는 경우도 있으니 검증해야 합니다. 담당자가 해당 프로젝트에 얼만큼 관여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번에 수행하게 될 프로젝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전 직장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포트폴리오로 제출한 경우, 당시 근무했던 조직의 인프라(인적자원, 장비, 기술 등)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는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같은 회사라도 다른 담당자가 진행한 결과물일 경우 개인의 감각적인 역량이 중요한 프로젝트였다면 같은 결과물이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포트폴리오에는 [전략-기획-연출-제작]의 네 단계 중에서 [연출-제작]의 가시적인 측면밖에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안업체는 [전략-기획] 측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기존 고객은 결과물을 잘 활용해서 성과로 연결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업체들은 의뢰자 중심의 설명보다는 제작실무적인 설명에 치중할 것입니다. 기업의 영상발주 담당자라면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영상이 필요하신 상황이기 때문에 “전 의뢰자는 그 영상을 어떻게 활용했나요?”, “해당 영상을 기획하기 전에 의뢰자는 어떤 것을 요구했나요?”정도의 질문을 통해 포트폴리오 넘어의 [전략-기획]적인 측면을 파악해야 합니다.
🤔 평가 기준을 세우지 않는 실수
업체를 선정할 때 평가의 기준은 다양하고 또, 매 프로젝트마다 달라집니다.
“관련 경험이 많은 업체를 만나야 한다”, “비슷한 요청을 많이 응대해본 PD가 있어야 한다”, “제작 기술 측면에서 인프라가 탄탄해야 한다”, “멀티플레이가 가능하고 생산성이 높은 업체를 만나야 한다”,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
내 프로젝트의 평가 기준이 뚜렷하게 세워진 상황이라면 최종 업체의 선정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준이 불분명하거나 누락되었다면 미팅 후에 다시 검증 절차를 추가하고 평가 기간도 길어지게 되기 때문에, 미팅을 진행하기 전에 기준을 세워둘 필요가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업체를 선택해야 하는 때가 다가오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입니다. 포기에 대한 아쉬움. 선택한 후보가 부족때문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는 후보지에도 좋은 요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종 선정을 한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의 장점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발생하는 아쉬운 마음을 ‘선택의 역설’이라 합니다. <책> <TED>
하지만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옳은 결정은 딱 하나만 존재합니다. (참고) 그래서 여러 기준을 모두 종합적으로 검토하되, 더 우선시되는 기준과 덜 중요한 기준을 구분해야 합니다.
※ 업체 평가기준을 준비할 때 도움될 글 <미팅심사단계에서 제작사와 나누면 좋은 이야기들(질문리스트)>
⛔ 종합 평가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실수
반대로 평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프로젝트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제작사를 선정하는 임무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업체를 찾아야 한다는 의욕이 지나칠 때 업체를 평가하는 절차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버려선 안 됩니다.
이를테면 평가 항목을 정해두고 점수표를 만들어서 매긴 뒤 합산해보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MCDA(Multiple-criteria decision analysis)라 부릅니다. 이 방식은 정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적합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구입시 가격, 연비, 승차감, A/S편의성, 기업이미지와 같은 기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정량화가 가능하며, 항목마다 가중치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 아웃소싱 업체를 평가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비드폴리오의 파트너스풀은 40가지 평가 기준으로 측정, 분류,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량평가만으로 최적의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면 전형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점이 가장 높은 업체를 안내드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업체가 내 프로젝트를 잘 수행할지의 여부는 업체가 절대적으로 항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전형과정을 거치면서 [조건미충족제작사제외 / 적합제작사지원 / 서류평가]로 정량적인 부분은 상당부분 평가되었기 때문에 미팅을 통해서는 정량화되지 못하는 정성적인 판단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합리적이려고만 하다가 시야가 좁아져 비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넓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업체와의 미팅은 심사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킥오프 회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업무를 진척시켜보며 일궁합을 맞춰보는 것이 평가항목을 추가시키는 것보다 더 도움될 것입니다.
⛔ 문서 제출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실수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문서화된 제작기획안을 요청하는 것은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단계입니다. <문서화의 필요성에 관한 글> 문서화된 제안은 업체와 계약하기 전에도 제출될 수는 있으나, 최소한의 이해와 설득을 위한 간소화된 버전에 그칠 것입니다. 계약까지 체결하고 선금까지 지불했다면 더욱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작성할 것입니다.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수많은 제작관계자들과 같은 목표로 협력하기 위해서도 제작기획안은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업체를 평가하기 위한 절차로 추가적인 문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①결정장애+과잉의존입니다. ②좋은 업체가 제외됩니다.
비드폴리오를 통해서 미팅까지 진행하고 있으신 상황이라면 벌써 5단계의 구체화과정이 이뤄진 상황인데요, [상담을통해 / 프로젝트공고작성을통해 / 수행업체의지원서를통해 / 미팅을통해] 다섯 단계의 구체화 과정을 거친 후에도 업체 선정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절차를 추가하거나 문서를 작성한다고 불신이 확신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전형 절차를 거치면서 [의뢰자의 필요]와 [수행업체의 계획] 사이의 빈틈을 메워나가고 있습니다. 빈틈이 모두 메워졌다면 최종결과물이 가시화될 것이고, 빈틈이 여전히 메워지지 못했다면 업체선정에 확신이 없을 것입니다. 문서의 문제가 아니라 빈틈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그나저나 이 빈틈을 채우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저희든 수행업체든 일을 도와드릴 순 있지만 대신해드릴 순 없습니다. 팔짱끼고 “어디 한 번 제안해봐” 라는 태도로 물러서 있다면 빈틈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영상 잘 만드는 업체를 찾는 것이지, 문서 잘 쓰는 업체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업체는 대체로 제작 문의가 많이 밀려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골라서 받습니다. 불필요한 절차나 과도한 갑질의 낌새가 보일 경우 미련없이 떠나서 단골 고객에 집중할 것입니다. 추가적인 문서를 요구하고 문서를 가장 열심히 쓴 업체를 선정하려고 한다면, 손님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도는 업체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억원대의 광고 프로젝트의 경우 문서화된 제안을 넘어 발표까지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선정되지 못하는 업체들은 제안준비와 발표에 수주간의 투입한 기획력과 자원이 손실로 누적이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광고 산업에서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탈락보상금rejection fee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좋은 인재를 모시기 위해 면접비를 지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기획 제안 과정에 들어간 노력이 비하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금액이지만, 실리적인 보상보다는 함께 비즈니스 전략을 고민해준 것에 대한 감사, 기획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