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와의 미팅은 단순한 명함교환과 인사에 그쳐선 안 됩니다. 어떤 제작사가 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지 판단하는 심사의 절차인 동시에, 실제로 수행하게 될 업체와 실무적으로 진척을 시켜보는 킥오프 회의이기도 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시는 만큼, 발전적인 회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제작사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수행계획까지 세워 미팅에 참석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안자료의 준비정도나 미팅의 진행방식은 업체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업체를 검증하면서 동시에 발전적인 회의를 진행하실 수 있도록 사전 회의 준비에 도움될 몇 가지 아젠다 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정리합니다.
Q.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원동기는 지원하는 수행업체마다 다를 것입니다. 대체로 ①돈이 되니까 ②실력을 입증하려고 ③경험을 쌓기 위해 ④재밌으니까 ⑤취지에 공감하니까 와 같은 이유로 지원합니다. ①②은 외적동기이며 ③④⑤는 내적동기입니다. 여러 요소를 고루 갖추고 지원한 수행업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임할 것이며, 결과물의 기대 수준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미팅에서 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지를 물어보세요. 지원 동기가 많거나 제작사 입장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로 여겨질 수 있다면, 단순한 의뢰자-수행업체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상호 협력적인 성장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나요? / 그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익숙한 질문으로 보일 것입니다. 면접에서 주로 쓰이는 질문입니다. 경험이 없다면 절대 답할 수 없는 질문, 거짓으로 만들어내거나 과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질문입니다.
연차가 높다고 경험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경험의 많음이 내 프로젝트의 성공을 보장시키지도 못합니다. 영상제작엔 분야가 넓기 때문에 연관성이 없는 경험은 도움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경력년수만 셀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연관된 경험의 총량을 파악하세요. 실제 경험 사례를 짚어물음으로 문제해결능력을 파악해야 합니다.
Q. 유사한 프로젝트 중에서 기억에 남는(일하기 좋았던) 의뢰자는 누구였나요?
이 질문을 통해 수행업체의 협력성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업체만 찾는다고 최고의 결과물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의뢰자와 일호흡이 잘 맞아야 할 것입니다. 일호흡 또는 일궁합을 [조직적인 궁합 / 개인적인 궁합]으로 나눠서 점검하면 좋습니다.
Q. ~라는 내용이 전달되어야 해요. 보는 사람이 ~라고 느껴야 해요.
즉각적인 대책이 세워지는지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분야에 전문적이거나 경험이 많을수록 가능한 선택지를 즉각적으로 제시할 것입니다.
이 질문에 즉각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고 “사무실에 돌아가서 생각해보겠다”라고 답하는 수행업체와는 앞으로의 협력이 수월할 것이라고 희망하기 어렵습니다.
즉각적인 대책이 마련되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영상을 제작하는 과정이 대책마련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필요한 영상-커뮤니케이션의 연출 방식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적절한 것을 활용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회의에선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했으나 사무실에 돌아가 영감을 받고 천재적인 창의력을 발휘해 해답을 찾아내겠다는 수행업체에겐 일을 맡기길 추천하지 않습니다.
(※ 스토리텔링 기반의 극 장르 혹은 대규모 광고 프로젝트는 해당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해당 프로젝트들은 별도의 기획과정을 거쳐야 좋은 안과 올바른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Q. 어느 시퀀스에 힘을 주고, 어디에선 힘을 빼는 게 좋을까요?
일을 많이 시키려면 돈을 많이 줘야 합니다. 돈을 적게 줄거라면 일도 적게 시켜야 하지요. 예산과 노동력은 비례합니다. 하지만 노동력이 성과에 비례하진 않습니다. 인원이나 시간을 두배로 투입한다고 영상의 퀄리티가 두 배로 증가하지도 않고, 영상의 퀄리티가 두 배로 증가한들 사업의 성과가 두 배로 달성되지도 않습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물론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 어딘지는 타겟 시청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의뢰자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수행업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자원을 집중시키는지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이 되겠습니다.
Q. 지금 유효한 선택지는 몇 가지 인가요?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나오더라도, 가장 좋으면서 확실하게 완수가 가능한 안의 수행계획까지 세우는 것을 미팅을 통해 진척시켜야 합니다. A안은 결과물의 퀄리티가 높겠지만 예산이 많이 든다거나, B안은 제작난이도가 쉬워서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지만 몰입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등의 각각의 제작안들은 일장일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편의 아웃풋을 만들기 위해, 한 곳의 업체와 계약을 진행하며, 하나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중간 회의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하더라도, 과감히 포기하고 한 가지 길을 남겨야 합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불필요한 경우의 수를 고민하지 않도록 제거하고,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의뢰사 측에서도 여러 선택지 중에서 어떤 선택지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업체의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뢰사의 의사판단 기준을 전달하는 대화의 방법입니다. 수행업체 측에서는 의뢰사의 의중을 모르는 채로 제안을 하면 빗나가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선택지를 제안하고 좁혀가는 과정이 길어지는 것 또한 의뢰사 측에서 지불한 자원이 헛되이 쓰이는 일이기 때문에, 수행업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선택지를 좁혀내야 합니다.
Q.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우리 프로젝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나요?
수행계획을 논의할 때, 주로 what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게 됩니다. what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더 중요한 how와 why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 질문을 통해 수행업체 측에서 why를 잊지 않았는지 분간해낼 수 있습니다.
비드폴리오의 프로젝트 공고에 쓰이는 많은 항목들 중에서 ‘제작배경’은 출발지에, ‘제작목표’는 목적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수행업체와 회의를 통해 도출하는 결론은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길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길의 끝이 목적지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why를 망각한 수행업체에게 키를 맡기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목적지와 이어지지 않은 길로 프로젝트가 향하게 됩니다. 회의가 산으로 가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 하면 좋은 질문입니다.
(※ 단순한 용역수행을 지시하는 프로젝트라면 해당하지 않습니다.)
Q. 제가 해야할 일이 있나요? 언제 무엇을 협조해야 할까요?
수행업체의 역할 커버리지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역할과 책임이 빈틈없이 채워져야 프로젝트가 완수됩니다. 의뢰자 측에서 채워야 하는 역할과 책임도 있고, 수행업체 측에서 채워야 하는 역할과 책임도 있습니다. 역할의 빈틈이 발생하는 것을 파악하는 연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빈틈이 발생했을 때 앞장서서 채우려고 하는지 또는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수행담당자의 프로젝트 관리역량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관리 역량은 크게 [예산관리 / 자원관리 / 일정관리 / 리스크관리] 네 가지로 구분할 때, ‘일정관리’능력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Q. 우리의 예산은 어떻게 쓰이나요? 제작에 참여하는 인원이나 스태프를 설명해주세요.
‘예산관리’ 능력과 ‘자원관리’ 능력을 파악하는 질문입니다.
예산관리 능력을 단순히 저렴한 견적으로 이해하면 잘못입니다. 예산마다 집행의 의도가 다릅니다. “품격이 떨어지지 않게 쓰더라도 제대로”, “완수가 중요하므로 예산절감보다는 확실한 계획으로”, “시장표준금액에서 손해보지 않는 수준으로”, “비용이 비싸더라도 빨리 완수할 수 있는 계획으로” 와 같이 예산에는 다양한 태도가 반영되고, 각 예산의 의도대로 자원이 할당되어야 합니다. 수행업체 측에서 예산의 의도를 옳게 이해했는지는 견적서라는 문서 형태로는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서 파악해내야 합니다.
같은 프로젝트라도 A제작사가 수행하면 이문을 남기지만, B제작사는 손해를 보며 울며 겨자먹기로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각 업체마다의 보유한 자원이, 내 프로젝트에서 효율을 내는 적정 자원인지 또는 비효율적인 부적합 자원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Q. 지금 계획대로 진행할 때 걱정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우리의 계획은 100% 완수될 수 있나요?
‘리스크관리’ 능력을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영상제작과정은 끊임없는 문제해결과정입니다. 계획이 구체화될수록 헤쳐나가야 할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앞으로 문제들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이고,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도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거나 없는 척 숨기려고 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해당 분야에 충분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분들이라면, 무조건 문제없을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예상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설명하며 안심시켜드릴 것입니다. 앞으로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공유하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이 프로의 모습입니다.